배고프고 병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도 밥을 준다고 하니 냇물을 건너 오셨습니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징검다리를 하나 둘 조심조심하며 건너 오셨습니다.
옷은 남루했습니다.
추워보였습니다.
신발은 다 헤어져 있었습니다.
얼굴은 검게 아니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그래도 조선족이 큰 소리로
“김씨 아저씨 저녁 자시러 오시라고 해라!”
라고 외치니 세 명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건너오셨습니다.
젊은 친구라야 60대 후반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79세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룩함과 경외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는 이야기를 나누기 전 한 마디 말을 던졌습니다.
“왜 나오려고 하셔요?”
“찬송이나 마음 놓고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
눈길을 피하려 땅 바닥에 시선을 두고
우물우물 쏟아 낸 말입니다.
‘왜 탈출하려는가’라는 질문에
노인은 겸손하게 답을 하셨습니다.
“찬송 한번…”
할아버지가 건너 온 그 냇물 소리마저 들리는 듯 했습니다.
허름한 집 마루에 걸터앉은 우리,
아니 그 분들의 모습이 잊혀질까 오히려 두려운 적막이 흘렀습니다.
“언제 나오실 수… 있으셔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65명의 탈출자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여서
비용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방법과 이동할 길목들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공안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그리고 어느 산을 넘어야 할지, 아이들도 있다지 않는가?
긴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도울 것 뿐인데…
찬송 한 번 마음 놓고 불러보고 싶다는데
무슨 설명을 붙여야 할까?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 한 마디로 결론을 이끌려고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을 쏟아냈습니다.
순간 노인의 입속에서 흘러내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그리고는 일어나 울타리 밖으로 걸어나가고 계셨습니다.
한 10분이나 걸렸을까?
노인이 돌아오고 계셨습니다.
제 눈은 노인의 얼굴에 멈추었습니다.
그 거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주먹을 쥐고는 몸을 곧게 세우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물었소이다.
저 미국에서 온 이목사가 우릴 돕겠다는데 따라 갈까요? 라고…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북조선에 남겨두는지 아느냐?’
라고 하시는 군요.”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노인의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목사님,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굶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랍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지면 남조선으로 가서
찬송이라도 실컷 부르고 집에 기고자 했는데…
이 땅에 남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시니…”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어서 가시라요! 경찰이 온다지 않소?”
누군가가 노인에게 알린 모양이었습니다.
일단은 철수해야 했지만 저는 좀 더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가지고 간 돈도 드려야 했고,
노인의 말도 좀 더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서울로 가시자고
한 번 더 권하는 제게 노인은
“나도 아오. 자유가 무엇인지를…
예배당 종도 쳐봤고, 성가대도 주일학교 교사도 해봤지요.
하지만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니…
자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소?
압네다. 나도 압네다. 자유라는 게 좋은 게지…
마음 놓고 성경 읽고, 찬송하고,
새벽기도 나가고, 헌금도 할 수 있고…”
노인 외에 다른 이들이 재촉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려다가 무릎을 꿇고
노인이 신고 온 신발에 입술을 대고 우는 동안
나의 목에 눈물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재촉한 손길이 있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드리고
“안녕히 계시라요.” 인사를 하자
그렇게 점잖았던 노인의 음성이 강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천국에서 만나자요!”
저는 죄인의 모습이 되어 노인에게 작은 소리로
“예, 천국에서 뵙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서둘러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분명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작아지는 소리 뒤에 분명한 음성.
“환난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죽음이라도’라는 말은 제가 생각해서 넣었을 뿐입니다.
서둘러 산골짜기를 빠져 나왔습니다.
먼 길이었습니다.
운전하는 아저씨는 예수를 믿은 지
몇 년 안 되는 조선족이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그냥 울어야 했고
운전하는 기사는 내 모습을 계속 확인하며 같이 울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궁금해진 나는
그 산골짜기를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 기사 아저씨를 찾아가
차를 대절해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기사가 사뭇 공격적인 말투로 쏟아낸 말,
“무얼 하러 오셨오?
그 할아버지랑 노인네들이랑
그 가족들이랑 모두 죽었단 말이요.
수용소로 끌려가던 성도의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 하지 않소?
여섯 명의 젊은이들은 끌려가지 않겠다고 덤비다가
매 맞아 현장에서 죽었답니다.”
기사 아저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구를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고난을 겪어야 하나?
할아버지와 함께 탈출하려던 그들의 생의 목적은 뭐였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지옥같은 것이었는데…
굶주리고 매 맞고, 억울함이란…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들의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고…
아! 그리고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79세 노인네야 그렇다 치자구요.
오랫동안 믿음을 지켜온 자랑스러움이라도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아니 어린아이들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로 죽어가야 했다니…
노인의 말대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선교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중
‘왜 이렇게 고난당해야 했나?’를
생각하지 않은 이들이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저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설교하다 말고 울고 글을 쓰다 말고 통곡을 합니다.
왜냐구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사랑 고마워…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가 끊어질 수 있을까?
주님은 나 같은 죄인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북한의 성도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여러분과 저를 통해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신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공산권 국가였던 헝가리의 성도들도
그 말씀 붙들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북한의 성도들도 그 말씀 붙들고
주님이 회복하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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