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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알리고 싶은 이야기

예수님의 살과 피

요한복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죽어서 천국을 보기 전까지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4 복음서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옹위하려고 난리가 났습니다.(6:15)

이분이 임금님이 된다면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우리를 로마의 식민지에서 해방 시켜주실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열두제자들도 들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우리는 영의정 좌의정 등등 한자리씩 얻게 될것이라 생각하며 흥분이 되었을 겁니다. 어부 출신 베드로는 국무총리로, 세리출신 마태는 경제부총리로 되겠지요.

제자들의 마음속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군중에서 분리시켜 급히 갈리리 바다 풍랑속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고의적이지요. 제자들의 육적인 욕망을 빼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풍랑을 만났을때 이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것이라면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삶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얼마나 놀라운 체험이겠습니까? 걸음더 성숙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이십니다.

 

그리고 다음날 제자들에게 ()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육적인 욕심이 이글거리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양식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니 군중들은 물론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 말씀이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알아 듣겠는가?(6:60)”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 하신후 성령을 보내주셨을때, 그때서 제자들이 깨닿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말씀을 깨달을 있습니다.

 

출애굽한 유대인이 장정만 60 이었습니다. 4 가족이라면 240만명입니다. 대략 200만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200만명을 40 동안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신발도 닳지 아니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29:5)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은 광야 40 동안 매일같이 내렸던 만나의 재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먹이시고 입히실 수도 있습니다. 만나가 지금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고 그분으로부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6:46) 제자들이여, 영의 눈을 뜨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라고 말입니다. 나의 살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1:14), 나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의 피를 통한 구속입니다.

 

출애굽때 만나를 먹고도 그들은 죽었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요. 기적을 매일같이 체험하고도 목이 곧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육적인 양식은 육신이 존재하는 동안만 살릴 있습니다. 영생을 주는 영의 양식인 예수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아니라, 자리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안수집사, 장로, 목사, 신학 박사, 대형교회가 목표가 아니라, 예수님 자체를 섭취하라고요. 내가 안에 네가 내안에 (3:20) 있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고 그들을 예수님께서 심판때에 살리실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풍랑을 통해 제자들의 육적인 때를 벗기신 영생에 대해 차원 높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유월절 성만찬을 하시면서 말씀이 실제로 일어날 것을 암시하십니다. 예수님의 살은 인류를 위해 납덩이가 달린 채찍에 찢기셨고, 예수님의 피는 죄악으로 물들은 땅을 적시셨습니다. 고귀한 희생의 댓가로 우리의 죄에 대한 구속을 치루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죄와 동거 없게 됩니다. 설령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과 떨어졌다는 것에 견딜 없게 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청부살인하고 나서 1년여 동안 아무일도 없듯이 왕궁에서 지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에 그는 꼬꾸라지고 통회자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컷으면 눈물로 침상을 띄웠다고 고백 하였겠습니까?(6:6). 만일 다윗이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도 사울왕 처럼 버림 받았을 것입니다(삼상15:11, 16:14).

 

그의 회개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왕상을 통해서도 있습니다. 그의 말년에 몸이 차가워지니 신하들이 절세미인 수넴여자 아비삭을 후궁으로 그에게 데려왔으나 다윗은 그녀와 동침하지 아니하였습니다.(왕상1:3-4). 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들중 한명은 일부러 나단이라고 지었습니다(대상3:5). 다윗은 아들의 이름 나단을 부를때마다 볼때마다 그의 죄를 생각하며 통회하였을 겁니다.

 

구속은 구원과 다릅니다. 구속(REDEMTION)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입니다. 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대신에 예수님께서 나의 값을 치룬 것입니다. 나의 공로나 의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고 은혜입니다. 불레(Boule) 해당합니다.

 

구원(SALVATION) 칭의 과정 입니다. 매일 나의 삶속에서 예수님의 살의 먹고 피를 마시며 피로 나의 죄를 정케하면서 성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치열한 구원의 여정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말씀하였습니다 (2:12). 델레마(Thelema) 해당합니다.

 

구속은 단번에 영원히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구속을 믿고 구원으로 여정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구속을 믿는 순간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은 구원파와 같은 사기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구원을 이렇게 말씀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가말리엘의 수제자인 사도바울이 이야기를 장구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돌이키십시오. 작은 죄나 죄나 죄는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천국가는 그날까지 방심하지 마십시오.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짓는 죄는 세금을 속이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혜롭게 세금 적게내고 정부혜택 받고 있다고 자랑까지 합니다. 이민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세금 이야기를 못합니다. 얼버부려서 두루뭉실 회개하라고 합니다. 교인들 떠날까봐서요. 대부분이 자영업이니까요. 양을 치고 먹이는 것과 교회를 키우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21:15-17).

 

예수님의 눈동자는 교회 사이즈를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의 종/백성이 아닙니다. 살고 싶으면 여기서 돌이키십시오. 잠시 세상의 안락함을 추구하다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집니다. 주인을 섬기지 마십시오.(6:24) 오늘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 바랍니다.

 

참고 설교:

마이클 목사, 요한복음6:41-59

신종국 목사:풍랑의 해석학, 구원교리역사,로마서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