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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알리고 싶은 이야기

김동호 목사의 예정론 비판, 어떻게 봐야 하나

김동호 목사의 예정론 비판, 어떻게 봐야 하나

 

과거부터 이견 있던 주제… “논쟁하기보다 서로 배우려 해야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칼빈의예정론 비판하자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를 두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사실 예정론은 과거부터 신학 사조간에 다소 이견이 있던 주제였는데, 이번 목사의 발언을 통해 그것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목사 발언의 핵심은 결국유기’(遺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라는 물음과 관계된 것이다. 칼빈의 예정론, 다시 말해 오늘날이중예정으로 알려진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구원 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으로, 이론에서 하나님은차별하는 혹은매우 냉정한 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이에 목사는예정론의 치명적인 문제는 구원의 능력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는 유리하나, 멸망의 책임도 결국 하나님이 지셔야만 한다는 있다저는 전적인 (인간의) 무능력을 믿는다는 점에서 칼빈주의자이지만, 예정론은 믿지 않는다 했다.

그러면서 그는인간은 구원에 관한 전적으로 무능력하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값없이 받는 하나님의 은혜라며그러나 멸망의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주셨음에도, 그리고 그것을 선택할 있는 자유를 주셨음에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흔히 사람들이 칼빈의 예정론을 통해버리시는 하나님 생각하는데, 그것은 예정론이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회개와 선택조차 구원에 어떤 영향도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는 목사의 분석이다. 이런 논리에서 하나님은 회개해도 구원의 여지를 주지 않는, 그런 차가운 신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멸망의 책임을 고스란히 분이 떠안는다는 것이다.

목사는사람에게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선택할 있는 자유가 있고 회개해야만 구원을 얻을 있지만, 죄를 지은 인간이 회개를 것을 능력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회개는 능력이 아니라 책임과 도리이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아서 당하는 멸망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강조했다.

목사의 같은 주장은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함께 인간의자유의지또한 강조하는 성결교 계통의 웨슬리적 입장과 유사하다. 전통 개혁주의가 구원을 위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배재한다면 웨슬리안들은 칭의와 함께 성화도 구원의 단계로 보고 연장선상에서 인간의 회개와 같은 자유의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실제 웨슬리안인 배본철 교수(성결대)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 또한 중요하다. 이런 인간의 반응을 (구원을 위한) 공로나 선행으로 이해해선 된다. 그런 점에서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 말했다.

반면 김종희 교수(백석대 역사신학)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거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아 인간에게 멸망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멸망에 대한 책임은 타락한 (모든) 인간 안에 이미 있다 “(하나님을 선택할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주어졌지만 타락으로 인해 효력을 발휘할 없다. 구원은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인해 가능하다. 점을 어거스틴을 이어 칼빈이 강조한 이라고 목사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러나 소모적 논쟁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울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성욱 교수(덴버신학교)저는 개혁신학권에 속한 복음주의 신학자다. 따라서 당연히 (칼빈의) 예정론이 성경에 부합하는 신학사상임을 믿고 받아들인다면서도그러나 예정론을 믿지 않을 경우 사람은 구원받을 없다고 생각하거나 구원을 심각하게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신학함과 성경해석에 대한 기본기가 결여된 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했다.

교수는예정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신학, 소위 알미니안이나 웨슬리안 신학을 거의 사이비 내지 이단으로 취급하는 태도 역시 성경과 부합하지 않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면서개혁파 신학 역시 결코 완전한 신학일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오류와 허점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불완전한 신학이다. 그렇기에 서로 배워야 이라고 제안했다.

 

배본철 교수도칼빈은 인간의 공로를 내세웠던 로마가톨릭에 대항해 하나님의 주권과 절대적 예정을 강조해야 했다. 웨슬리 역시 명목상 구원만을 외치는 영국 성공회에 대한 저항으로 인간의 책임을 역설했다그러나 지금 우리는 칼빈과 웨슬리의 시대를 모두 경험하고 배웠다. 어느 쪽의 편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정점들을 모두 활용해 보다 발전된 교리를 완성해갈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해묵은 교리 논쟁에 빠져선 이라고 말했다.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김진영 기자 / 입력 : 2012.07.18 07:03

 

 

아래 글은 어떤 무명의 글인데 구원의 원리를 잘 설명하였기에 옮겨 보았습니다.

예정론과 만민구원론을 둘다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7)

이것을 수학 방정식으로 설명하면, [ + 생령 = 사람] 입니다.

KJV : 생령 breath of life , 사람 living soul

하나님께서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 물고기들은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오로지 사람만 생령을 불어넣어 주셔서 창조하셨습니다. 생령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있을 겁니다.

 

생령이 없는 인간은 입니다.죽을때 생령이 빠져나가므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생령은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지요.

여기서 천국과 지옥은 다른 부분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생령에 대해서만 집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칼빈의 예정론이 아주 중요한 것을 간과하였음을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부부가 되어 임신하게 될때 ,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순간 생명이 탄생합니다.

여기서 생명은 사람입니다. (육체) 생령이지요.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떤것도 창조를 없습니다. 단지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만들어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생명에 들어가는 생령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남편과 아내가 힘을 합하여 창조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간이 창조주가 되는 것이니까 절대 그럴수는 없습니다.

생령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낙태나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므로 중범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길르는 가축은 아무리 죽여도 하등의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생령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생명이므로 낙태를 한다면 살인에 해당합니다.

낙태를 자유롭게 한다면 그것은 자기몸속에 있는 생명을 자기가 기르는 가축으로 밖에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령이 무엇일까요? 스피릿, spirit 이라 생각합니다. 죽었을때 남는것은 영이니까요.

생명에게 들어있는 영은 아직 자라지 않은 정말 어린영일것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때만 자라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로부터 것이기 때문이이요.

그래서 나이가 들었어도 예수님을 영접한 분은 영이 어린아이인 것입니다.

 

영은 창세전부터 예비되어 있던 영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로 부터 오는 것이기때문이죠.그리고 영에는 천국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안내가 이미 프로그램이되어 있는것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때 완전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들이 선악과를 먹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까지도 주셨습니다. 인간이라면 그렇게 위험한 모험은 하지 않았을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인격체로서의 그들이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로보트를 만들때 프로그램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따라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프로그램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로보트식의 프로그램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억지로 제압하지 않습니다. 쉬운말로 표현하면 싫어하는데도 억지로 손목을 비틀어서 하나님께 복종하도록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여 나의 자유의지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킬때 영안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과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때부터 천국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하나님의 가이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 4절에 "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는 말씀이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자동차의 네이게이터를 생각해보십시오.

네비게이터에 불이 들어오고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데 길이 매우 좁고 협착합니다.

그러므로 네비게이터의 신호에 따라가야지 끝까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회전 신호에서 좌회전하고 U 신호에서 직진하면 길을 헤메게 됩니다.

네비게이터가 자꾸 U, U 그러는데 이젠 시끄럽다고 네비게이터를 꺼버립니다.

그렇게 않듣고 경험과 지식을 의지해서 멋대로 가다가 전봇대 들이 받고 낭떠러지로 가면 사망하게 됩니다. 내가 않듣다가 사망한 것을 하나님 핑계댈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실례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해 보면 아시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본체이시며 악은 그림자라도 접근을 하지 못합니다. 심판을 하시는 것은 악을 허용할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예정을 하셔서 악역을 담당할 영과 구원받을 영을 따로 구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는 알게 됩니다. 생명이 모태에서 탄생할때  선 하신 하나님께서 넌 지옥갈 영혼이다라고 넣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구원에 관한 성경의 모든 말씀과 부딪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같은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탄생될때 영혼의 끝도 이미 아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분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받아들이는 외에는 어떤 수학적 논리로도 설명이 않될겁니다.

 

아인슈타인은 가능했을지도.....

 

여기서 너무 깊이 묵상을 하면 머리가 터질지도 모르니까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것이 건강에 좋을겁니다..

 

어느 미국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은 정말 맞는 예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다가 나중에 믿고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천국에 갔더니 성안에 아름다운 홀이 있었읍니다. 지나가려고 하다가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 갔더니 혼인 잔치의 연회가 훌륭하게 차려져 있었고 금빛 테이블 금빛 의자들이 너무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 있었읍니다.

호기심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더니 앞자리에 자리에 앉을 사람의 이름이 적힌 봉투가 있었읍니다.

 

다시 호기심에 봉투를 열어 보았더니 너무도 놀랍게 자기의 이름이 적혀 있었읍니다.

하도 신기해서 옆에 있는 천사에게 물어 보았읍니다. 이것이 우연인가 아니면 알고 준비한 것인가? 하고 물었더니 천사가 하는 말이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셔서 실수가 없으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구원에 중요한것은 다음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

이와 같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8: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2:11).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말씀을 보건대 하나님께서는 한영혼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본다면 어떤 영혼은 자기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어떤 영혼은 중간에 배도할 것도 알고 계시고, 어떤 영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슬쩍 가로챌 것도 알고 계십니다. 어떤 영혼은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올것도 이미 알고 계시고 또 어떤 영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때부터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의지를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 나는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가 이제 영원히 택함받은 백성이다라고 안심하기 시작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넓은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유의지만 없었다면 인간은 타락하지도 죄를 짓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자유의지가 컨트롤 당한다면 우리의 구원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로보트가 된 성도로부터 받는 영광은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컨트롤하기 힘든 자유의지를 갖고도 한번 구원을 영원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순종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나를 돌아보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며 하나님께서 택한 영혼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이때에 잘 어울리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의 미련함을 통해 영혼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영혼에게 돌아설 수 있도록 권면을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개시켜 천국 백성답게 성숙시키시고 사용하시고자 하시며 그것이 예수믿는 우리를 이땅에 남겨 놓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천국에 돌아왔을때 상급주시려고...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