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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알리고 싶은 이야기

이것만은 실수하지 마세요.

이것만은 실수하지 마세요.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실수와 실패입니다.

그러나 결코 실수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 구원에 대한 착각입니다.

 

다른 것은 착각해도 고쳐 나갈 수 있지만 구원에 대한 착각은 영원한 멸망이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위험을 알고 있었기에 결코 착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복음을 전파한 후에 버림을 받을까 조심하라.

스승 된 자의 심판이 크도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

내가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내가 날마다 죽노라. 오오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은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예정과 선택되었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 은혜를 찬송하며 감사하며 삶으로

그 생명을 나타내기를 발버둥 치면서 살았습니다.

착각과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구원에 있어서는 열매가 시금석입니다.

열매가 없으면서 아무리 나는 좋은 나무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열매는 바로 당신의 실제적인 모습으로

구원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확실합니다.

구원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관계를 가집니다.

관계를 가지지 않는 생명은 생명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 그리고 열매가 열리는 관계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머리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입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는 머리로부터 순종함으로 활동하는 열매를 가져오게 됩니다.

성경은 항상 열매로 끝을 맺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함께 먹었던 이유가 열매를 위함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이유가

바로 열매를 맺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아무리 믿는다 할지라도

내가 구원받았다는 잘못된 착각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착각에서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길 뿐입니다.

 

심판의 주님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열매를 찾으십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십니다.

주님과의 관계에도 깊이가 다릅니다.

피상적으로 아는 단계가 있고,

더 깊은 관계로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모신 단계가 있으며,

그보다 더욱 더 깊은 단계로 주님과 더불어 먹는 친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피와 살은 너희를 위한 영의 양식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생명을 먹는 것입니다.

열매 그것은 생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먹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이것이 열매입니다.

 

아직도 번영신학에 빠져서 기복신앙으로 세상에서 잘되고,

부자 되고, 세상의 것들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며 부르짖는다면

당신은 세상의 신을 따르는 자이지 결코 주님을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을 구하며 사십니까?

당신의 열매를 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미국 남가주 예일교회 . 전효성 목사 http://yeilchorange.com/